이종석은 1958년 5월 11일 경기도 양주군(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이다.키와 체중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고 있으며,본관은 경주 이씨이다.배우자 유순주와 슬하 1남 1녀를 두고 있다.학력은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행정학 학사를,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현재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연세대학교 석좌교수,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종석은 문민정부 시절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책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았다.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으며,국민의 정부에서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제1분과 정치행정위원으로 활동했다.또한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을 지내며 북한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보여주었다.
참여정부에서는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을 거쳐,2003년 3월 24일부터 2006년 2월 9일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차관급)을 역임했다.2006년 2월 10일에는 제32대 통일부장관에 임명되어 2006년 12월 10일까지 재임하며 한반도 평화 정책을 추진했다.통일부장관 재임 중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도 겸임했으며,이후 한반도 평화포럼 공동대표와 베이징대학 석좌교수를 지내는 등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꾸준히 기여해왔다.
이종석은 1958년 5월 11일 경기도 양주군(현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정무직 공무원이다. 키와 체중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고 있으며, 본관은 경주 이씨이다. 배우자 유순주와 슬하 1남 1녀를 두고 있다. 학력은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78학번)를 졸업했다.
이종석 - 학력 및 초기 경력
대학 졸업 후 금성사(현 LG전자)에 2년 반 동안 재직했으나, 학업에 대한 흥미가 생겨 퇴사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서 장을병 교수를 사사하며 학문의 길을 걸었다. 그는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의 역사적 경험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과 구조변화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생 시절부터 <해방전후사의 인식>에 논문이 포함될 정도로 북한 연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김일성 가짜설을 반박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는 세종연구소에서 본격적으로 북한학 연구에 매진했다. 특히 대북 화해협력 정책을 꾸준히 주장하며 햇볕정책의 당위성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이러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2000년 국민의 정부 시절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참여정부 활동 및 통일부장관 역임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외교안보 분야의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외교통일안보 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사무차장으로 재직했다. 외견상 NSC의 2인자였지만, 실제로는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 수립과 집행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주도한 핵심 인물로 평가받았다. 평화번영 정책, 균형적 실용 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등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라크 전쟁 추가 파병 규모를 3,000명 이내로 제한하고, 대북 포용정책을 옹호하며, 수평적 한미관계에 입각한 대미 자주외교를 주장하는 등 참여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논란 중심에 있었다. '자주파 대 동맹파' 구도에서 자주파의 간판주자로 분류되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규모를 3,000명으로 줄이는 데 그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언급하며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2006년 제32대 통일부장관으로 중용되어 2006년 2월 10일부터 2006년 12월 10일까지 대북정책을 관장했다. 당시 50세가 채 안 된 나이에 장관직을 맡아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핵심 요직에 올랐다.
그러나 2005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강력한 대북 제재(BDA 제재) 이후, 북한이 2006년 7월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를 포함한 미사일 7발을 발사하고 10월에는 첫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북한 핵실험으로 한반도 내 군사적 우위 구도에 변화가 생기자, '남북 경제협력(개성공단) 자금이 북핵 개발 자금으로 전용되었다'는 보수층의 강한 비난이 이종석 당시 통일부장관에게 쏟아졌다. 결국 그는 핵실험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의미로 그해 12월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 등과 함께 교체되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참여정부 이후 활동 및 현재
공직에서 물러난 이종석은 세종연구소로 복귀하여 연구 활동에 전념했다. 북한 문제에 대해 언론에 글을 기고하거나 인터뷰에 응하며 꾸준히 전문가로서의 목소리를 냈다. 또한 정치인들에게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 2021년에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는 외곽 조직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정치적 활동을 재개했다.
2021년 4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문재인 정권은 한미 동맹 강화를 축으로 중국을 포함한 다자간 협력을 추구하는 자세를 취한다"며, "어떠한 경우에도 한미 동맹이 기초가 되는 데에는 변함이 없지만, 동시에 현실 외교는 국익 관점에서 동맹과 다자간 협력의 밸런스가 필요하다"고 자신의 국제정치관을 밝혔다. 특히 "한중 관계는 예를 들자면 캐나다와 미국의 관계와 닮아있다. 대립할 수 없는 지리적 숙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제재 속의 북한 경제』(2019, 공저), 『Peace on a Knife’s Edge』 (2018),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황』(2017), 『칼날위의 평화: 노무현시대 통일외교안보비망록』(2014) 등이 있다.
현재 이종석은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상태이며, 연세대학교 석좌교수,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5년 6월 4일 이재명 정부의 초대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되었다.
논란:이종석은 과거에도, 그리고 최근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이후에도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논란이 있었다.1국회에 제출된 서면질의서에 따르면, 지난 5년간 (2022년 3월 ~ 2024년 10월) 총 16번에 걸쳐 속도위반 및 어린이보호구역 신호·지시 위반으로 적발되어 73만 원의 과태료를 납부했다. 구체적으로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 속도위반 5건, 스쿨존 신호·지시 위반 1건, 일반 속도위반 10건이다. 이에 대해 그는 "부주의했던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교통법규 준수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쓰겠다"고 밝혔다. 2006년 통일부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었을 당시에도 인사청문회에서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지적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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