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수 : 전 kt wiz 야구 코치, 그에 대해 알아보자.
박경수(朴慶洙 | Park Kyung-su)는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선수이자 코치로, 1984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관악구에서 태어났다. 178cm의 키에 80kg의 체격을 가진 그는 우투우타의 내야수(2루수, 유격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야구 실력을 발휘해왔다. 2003년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으며 프로 무대에 데뷔했고, 이후 LG 트윈스에서 2014년까지 뛰었으며, 2015년부터 kt wiz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왔다. 2025년부터는 kt wiz의 1군 QC코치 겸 주루코치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박경수는 병역 의무를 공익근무요원으로 이행했으며(2012~2013), 등장곡으로는 서문탁의 《My Life》를 사용했다.
박경수의 가족으로는 부모님, 형, 아내 김수진, 두 딸 박은서와 박은아가 있다. 그의 종교는 불교이며, 소속사는 리코스포츠에이전시이다. 팬들에게는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아왔으며, 2019년부터 2024년까지 노라조의 《우리동네 HERO》를, 그리고 20162017년 및 20222024년에는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응원가로 사용하며 야구장에서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박경수는 내야 전 포지션에서 넓은 수비 범위와 탄탄한 기본기로 인정받았다. 특히 2루수 포지션에서의 활약이 두드러졌으며, 뛰어난 경기 운영과 후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으로도 많은 평가를 받았다. 프로 입단 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선수 생활을 이어온 그는 kt wiz의 창단 멤버로서 팀의 성장에 큰 기여를 했다. 이제는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로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며, kt wiz의 발전에 이바지할 예정이다.
박경수는 대한민국의 前 프로야구 선수이자 現 kt wiz의 1군 QC코치 및 주루코치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내야수였으며, 특히 2루수 포지션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선수로서의 박경수는 KBO 리그에서 대기만성형 선수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LG 트윈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초창기에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으나, kt wiz 이적 후 기량이 만개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 잡았다. 은퇴 후에도 야구에 대한 애정을 이어가며 지도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박경수 - 아마추어 및 프로 입단 과정
박경수는 성남고등학교 시절부터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유격수 유망주였다. 당시 “기본만 해도 박진만, 잘하면 이종범이 될 재목”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고교 야수 최대어로 불렸다. 이러한 잠재력을 인정받아 2003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서울 연고팀인 LG 트윈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계약금은 4억 3천만 원으로, 당시로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입단 직후에는 ‘제2의 유지현’ 혹은 ‘유지현의 후계자’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팀의 차세대 프랜차이즈 스타로 주목받았다. 실제로 유지현이 은퇴한 후 등번호와 응원가를 모두 물려받았고, 구단 차원에서도 박경수의 잠재력에 큰 기대를 걸었다.
LG 트윈스 시절의 부진과 한계
그러나 LG 트윈스 시절의 박경수는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군에서 많은 기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타격에서의 기복과 부상으로 인한 공백이 잦았다. 팔꿈치 부상(2003년), 어깨 탈구(2004~2005년), 손목 인대 손상(2009년), 햄스트링 부상(2010년) 등 부상 악령에 시달렸고, 이로 인해 경기력도 들쭉날쭉했다. 컨택 능력에서 한계를 보이며 '눈야구'를 기반으로 한 출루율에 의존했지만, 장타력과 정확성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LG 시절의 박경수는 ‘터지지 않는 유망주’라는 꼬리표와 함께 2000년대 중후반 LG 암흑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남았다.
kt wiz 이적 후의 재도약과 전성기
박경수의 야구 인생은 2015년 kt wiz로의 이적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30대에 접어든 나이에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량이 만개했다. 2015년부터 매년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며 중장거리 타자로 자리매김했고, 변화구와 실투를 놓치지 않는 타격 능력, 선구안, 준수한 수비력을 기반으로 팀의 중심 타선에 자리했다. 특히 2루수로서의 홈런 능력은 리그 최정상급이었으며, KBO 2루수 통산 최다 홈런 기록(161개)을 보유하게 되었다.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플레이를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나이가 들어서도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 가능한 멀티플레이어로서의 가치를 입증했다. 특히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 결승 홈런을 비롯해 시리즈 내내 맹활약하며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었고, 부상으로 중도 이탈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임팩트를 남겨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지도자로서의 새 출발
2024년 준플레이오프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박경수는, 곧바로 2025 시즌부터 kt wiz의 QC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QC코치는 경기 데이터 분석, 전술, 훈련 방향성 제시 등을 담당하는 중요한 보직으로, 박경수는 선수 시절의 풍부한 경험과 야구 이해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2025년 5월 13일에는 주루코치 역할까지 겸임하게 되어, 1루 베이스코치로 그라운드에 복귀하며 선수 시절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팀에 기여하고 있다.
플레이 스타일 및 특징
박경수는 공수주를 고루 갖춘 내야수로 평가되었다. 고교 시절부터 유격수로서 촉망받았으며, 프로에서도 유격수, 2루수, 3루수, 1루수 등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했다. 수비에서는 안정성과 기본기에 중점을 두며, 노련한 플레이와 빠른 상황 판단으로 팀 내야를 단단히 지탱했다. 부상 후 어깨는 약해졌지만, 역모션 송구나 병살 플레이 등 고난도 수비에서도 수준급 기량을 유지했다.
타격에서는 빠른 포심보다는 변화구나 실투를 공략해 장타를 만들어내는 유형이었다. 컨택 능력은 평범했으나, 선구안이 좋아 많은 볼넷을 얻어내며 OPS(출루율+장타율) 지표가 높은 타자로 활약했다. 주루는 빠르지 않았지만, 탁월한 주루 센스로 이를 보완해 나갔다.
박경수는 KBO 2루수 연속경기 무실책 기록 1위(107경기)를 보유한 선수이기도 하며, 이는 그의 안정적인 수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다. 특히 큰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여준 선수로, 첫 포스트시즌 경험이었던 2020년과 2021년 플레이오프 및 한국시리즈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반면 2022년 이후에는 부진과 노쇠화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짧은 전성기 이후 빠르게 기량 저하를 겪은 아쉬움도 남는다.
여담 및 인간적인 면모
박경수는 ‘똥개’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는 성격이 순하고 친화력이 좋아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kt wiz에서는 주장 역할을 맡으며 ‘개주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과거 최훈 작가의 야구 카툰에서 개로 묘사되기도 했으며, 이런 별명과 캐릭터는 팬들 사이에서도 친근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도 많다. 아버지가 위즈파크 경기장에서 관중에게 박경수의 사인볼을 건넨 사연, 가족과의 훈훈한 에피소드, LG 시절 동료였던 우규민, 성남고 시절 동기 노경은과의 친분 등은 그가 팀 내외에서 얼마나 좋은 동료였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프로포즈 때 ‘이노래’의 가사를 바꿔 불러 아내에게 감동을 준 이야기도 유명하다. LG 팬들 사이에서도 비난 여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실함과 팬 배려를 잊지 않는 선수였으며, kt 이적 이후에도 신중하고 배려 있는 언행으로 양 구단 팬 모두에게 좋은 이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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